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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구 Namdong-Gu 행복한 삶을 함께하는 희망찬 남동구 남동구 Namdong-Gu


지명유래

  1. 남동구소개
  2. 구정현황
  3. 지명유래

구월동(九月洞)

현 시청 소재지인 구월동은 소래산의 주안봉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한 구릉을 이루었는데, 그 형태가 마치 거북이와 같다 하여 구산이라고 불렀다. 또한 마을 언덕이 반달과 같이 휘어져 있어서 구산의 ‘구’와반월의 ‘월’을 따서 ‘구월리’가 되었다.
구월동은 원래 ‘큰 구월’, ‘작은 구월’ 등의 자연부락이 있는 곳이었다. 자연부락의 이름에서 연유되어 구월동이 되었고 80년대 구월 2동이 새로 생겨났다.그 후 택지가 개발되고 대단위 아파트가 건립되면서1991년에는 구월 3동, 1993년에는 구월 4동이 추가로 생겼다.
구월동은 옛날에는 인천부 주안면에 속해있던 성말,구월말, 못 윗말, 전재울, 뱅(뱀)골, 주먹거리, 독정마을 등의 자연부락이 있었다.

간석동(間石洞)

간석동은 원래 인천부 주안면 석바위와 새말부락이었다. 1903년 인천부가동리 명을 확장할 때에 석암리, 간촌리로 구분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간촌리, 새말, 벌터, 실은재, 석촌, 쇠파리, 풀무골, 삼거리, 기와집말을 병합하여 간촌과 석촌의 이름을 따서 간석리라 하여 부천군 다주면에 편입되고 간석리로 개칭 하였다.
1936년 문학면에 편입 되었다가 1968년 구제 실시와 1981년 직할시 승격으로 남구 간석동이 되었다.

고잔동(古棧洞)

우리나라 옛 지명에 땅의 한쪽이 돌출한 곳을 ‘곶(串)’이라 부른다. 순수 우리말이며 황해도의 ‘장산 곶’이 대표적이다. 장산곶은 황해도에서 서해 쪽으로 뻗어 있는 곶이다.
우리고장 남동구 고잔동은 남동공단이 생기기 전만해도 현재의 남촌동에서 논현포대가 있는 호구포에서 운전면허 시험장이 있는 지역까지 뻗어 있는 ‘곶’이었다.
옛 한화 공장이 있던 곳을 고잔동이라 부르는데, 현재 ‘고잔’이란 지명을 쓰는 곳은 남동구 고잔동, 안산시 고잔동 등 한자도 같은 ‘고잔(古棧)’을 쓴다.
육지가 바다 쪽으로 반도 모양으로 뻗어나간 지형을 ‘곶(串)’이라 하며 곶의 안쪽 마을이 ‘곶안’이 되고 후에 ‘고잔(古殘)’으로 바뀌었다.
고잔은 곶의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고잔은 인천의 최남단에 위치한 해안지역으로 인천부 조동면 고잔리로 변동없이 불려오다가 1914년 3월 1일 부천군이 신설되고 그 해 4월 1일 남촌면과 조동면을 합해 남동면이 될 때 고얏말, 돌우물, 갈매를 병합하여 부천군 남동면 고잔리가 되었다가 1947년 1월 1일 고잔동이 되었다.

논현동(論峴洞)

논현동이란 옛날 마을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어른들이 마을의 넓은 공터에 모여서 동네의 중대사를 의논을 했다는데서 이름이 지어졌다는 설과 고개에 논이 있어 논고개였는데 이것이 한자어로 ‘논현(論峴)’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옛날 사신들이 수산포구에서 중국으로 떠날 때 배웅 나온 가족들과 이별을 하며 넘는 고개라 하여 ‘논현동’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논현동은 본래 인천부 남동면 논현리 지역으로 논고개 마을과 모래 마을로 이루어졌다.
1914년 3월 1일 부천군이 신설되고 그 해 4월 1일 남촌면과 조동면을 합해서 남동면이 될 때 사리울, 백호뿌리, 서당골 등을 통합하여 부천군 남동면 논현리가 되었고 후에 논현동이 되었다.

도림동(桃林洞)

도림동은 옛날부터 복숭아밭이 많아 ‘복숭아 골’이라고 불러온 데서 생긴 지명이다. 인천부 남촌면 도림리, 오봉리 지역으로 도리미 또는 도림, 도산이라 하였는데 1914년 3월 1일 부천군이 신설되고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숫골, 덕골을 병합하여 도산리로 되고, 부천군 남동면에 편입되었다. 1940년 4월 1일 다시 인천부에 편입되어 일제 때에 ‘신도산정’이라 부르다가 1946년 1월 1일 도림동이 되었다.
1977년 4월 18일 시 조례 제 1075호에 의거 수산동을 통합하였고, 1988년 1월 1일에는 남동구의 신설로 남동구에 편입되었다.
대통령령 제 12367호에 의거 남구 선학동에 있던 남촌동을 통합하였으나 남촌동의 동세 확장으로 1991년 8월 21일 남촌동이 다시 분동되었다.

만수동(萬壽洞)

옛날부터 인천은 장수하는 곳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현종 원년, 인천에 100세 노인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의 평균 연령이 40여세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는 보통 사람의 두 배 반을 산 것이다.
특히 만수동과 장수동 지역은 장수로 유명했다. 그래서 만수동에 오랜 삶을 나타내는 ‘수(壽)’자가 들어간 것이다. 동의 명칭도 ‘만수동(萬壽洞)’으로 붙여지게 되었다.
만수동은 옛날에는 새말, 구룡골, 산밑말, 담뱅이말, 장승배기, 새골, 비리고개, 돌골, 쇠판 등의 동네가 있었다.
만수동은 20여년 전만해도 띄엄띄엄 형성된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도시 근교농업을 하던 곳이었는데, 1970년대의 도시화로 크게 발전한 곳이다.

서창동(西昌洞)

조선시대에는 농촌에서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곡식을 가까운 창고에 저장했다가 국가에서 필요시 한양까지 운반하였다. 인천의 남촌면과 조동면 사람들은 추수 후 나라에 내는 세곡을 20여리 떨어진 북창이나 동창에까지 가서 내야 했다.
그런데 세곡을 내러가는 길이 너무나 험해 큰 곤욕이었다. 이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하여 가까운 곳에 창고를 지어 달라고 관에 요구하자 관에서 수용해 새롭게 지은 창고가 서창(西倉)이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서해 바닷물이 이곳까지 드나들면서 서창에 포구가 생겼는데 주민들은 ‘배를 모아 서해에서 창성하라’는 뜻에서 서창(西昌)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서창동의 지명유래는 두 가지 뜻으로 전해져오고 있으나 현재의 행정동명은 서창동(西昌洞)이다. 서창동은 본래 인천부 조동면 설래리, 골촌리, 독곡리등의 지역을 포함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골, 걸재, 장굴, 설내 마을을 합쳐 ‘서창리’가 되어 부천군 남동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46년 1월 1일부터 서창동이 되었다. 서창동은 현재 서창2지구의 개발로 인구가 늘면서 장수서창동과 서창2동으로 분리되었다.

수산동(壽山洞)

수산동은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로 사람들이 오래살 수 있는 터전이란 뜻에서 수산리라 불려지게 되었다.
원래는 인천도호부 시절 남촌면 발리와 경신리 지역으로, 바리때처럼 생긴산이 있으므로 바리미, 바래티, 배래터, 바렷, 배렷 또는 발산, 발촌이라 불렀다.
1914년 3월 1일 부천군이 신설되고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 아누굴, 황굴, 찬우물, 경신을 병합하여 발산리라 했다. 1940년 4월 1일 제2차 인천부에 다시 편입되어 일본식으로 ‘수정’이라 하다가 1946년 1월 1일부터 동명 변경에 의하여 수산동이 되었다.

운연동(雲淵洞)

운연이란 음실의 뜻에서 오는 구름의 ‘운’과 연악의 ‘연’자를 따서 지은 마을 이름이다.
운연동은 원래 인천부 조동면 음실과 연락골 등의 지역으로 1903년 8월 인천부가 관할 동리 명을 확정할 때 상음리, 하음리, 연락리로 나뉘어졌다.
1906년 연악리가 되고 다시 1914년 3월 1일 부천군이 신설되면서 부천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4월 1일에 남촌면과 조동면이 통합한 남동면에 편입되고 1914년 11월 20일 운연리로 바뀌었다.
1940년 4월 1일 다시 인천부로 편입되면서 ‘운연정’이 되었다가 1946년 1월 1일 운연동으로 개칭되었다.

장수동(長壽洞)

장수동은 조동면의 장자리, 만의리, 수월리로 1914년 3월 1일 부천군이 신설되면서 남동면 소속의 장수리가 되었다. 장수리는 장자리의 ‘장’과 수월리의 ‘수’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1940년 4월 1일 인천부에 다시 편입되었고, 장수정이 되었다가 1946년 1월 1일 장수동이 되었다.
이 장수동은 거마산, 관모산으로 둘러싸여 60% 이상이 산지이며, 옛날부터 만수동과 더불어 장수하는 마을로 유명했다.
1968년 구제실시에 따라 인천시 남구 장수동이 되었다가 1988년 1월 1일 남동구의 신설로 남동구로 편입되어 인천직할시 남동구 장수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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